배추값 효율화, 출구 없을까
올해는 배추 생산량이 늘어나 소비자 가격이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다. 풍작이 농가에게는 시름을 주고 소비자들에게는 위안을 주고 있다. 배추 값이 떨어지면서 벌크 판매량은 급격히 늘고 있다. 김치를 사먹는 대신 집에서 직접 담가 먹겠다는 주부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산지와 소비지 가격 차이를 놓고 언론에서 집중포화를 맞았던 품목이 배추다. 문제의 품목인 동시에 ‘너무 중요한 채소’이기 때문이다.
최근 배추 가격 하락세가 만만치 않자 ‘산지폐기’가 검토되고 있으며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마저 보이고 있다. 일단 시장 분위기부터 보자.
한국 음식의 핵심은 김치다. 김치는 곧 배추와 무다. 김장철 최대 관심사가 배추 값으로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동안 시장에서는 포장 김치의 위세가 등등했다. 편리성과 가격 경쟁력에 힘입어 시장규모도 커지면서 점차 생활풍속마저 바꿀 기세였다. 장기적으로는 ‘김장’ 풍속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올해 일어난 멜라민 파동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가공식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공교롭게 배추 값이 폭락하면서 김치를 사먹는 대신 집에서 직접 담가 먹으려는 주부들이 늘어난 것이다.
한 유통업자는 “김장채소 수급 문제는 매년 일어나는 고민이다. 근본적 해결책이 생길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가공식품 생산이 늘어나면서 대단위 계약재배 형태가 증가하고 있지만 ‘무와 배추의 근본적 생명력’이 벌크 판매에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 와중에 일본에서 ‘한국 무-배추 사주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흥미롭다.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 주최로 재일한국인회, 재일대한민국민단, 재일한국인연합회, 재일한국음식협회, 재일귀금속연합회 등이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주일한국대사관, 농수산물유통공사 일본지사 등이 공조를 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한국산 무-배추 사주기 운동’은 11월 17일~12월 12일 일본 전역에 걸쳐 있는 교민과 한국식당, 김치가공공장 그리고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예상 판매량은 매주 2000박스(15kg 기준)씩 총 360톤.
실제 소화물량이 얼마가 될지 알 수는 없다. 계획대로 팔린다는 보장도 없고 일회성 행사로 그칠 수도 있다. 기존에 거래하는 업체들이 있고 나름대로 익숙해 있던 시스템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새로운 판매루트 하나가 발생한 것은 분명하다. 서길남 재일한국농식품연합회장의 말이다.
“지금 일본인들은 중국산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과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멜라민 파동은 물론 중국산 식품에서 각종 안전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농산물이 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다음 세 가지 근거가 흥미 있다.
#1 일본산 배추와 무는 물이 많다. 맛있고 우수한 한국산 배추, 무맛이 알려지면 장기적으로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2 살충제 등 농약성분이 검출된 중국산 야채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한국산의 안전성과 맛을 제대로 홍보하면 고정판매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3 일본 전국에 퍼져 있는 김치공장 수요도 만만찮다. 한국산 배추와 무로 담그는 김치가 맛이 월등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여러 가지 절임식품 원료까지도 한국농산물로 대체될 가능성이 많다.
일본에는 재일동포 70여만 명이 산다. 한국 가정요리 전문식당은 5만여 개다. 이들만 활용해도 엄청난 시장이다. 그 외에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품질이다. 잔류농약과 유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벌레 방지 등이다. 한마디로 일본 후생성 검역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요즘 산지는 소비지의 기준과 소비자 트렌드에 민감하다. 이제 우리 산지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소비자들도 감안해야 할 때다.
< 더 바이어 수석기자 김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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