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한옥의 정형 찾기
한 민족의 ‘집’을 표현하는데 있어 기준이 되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첫째는 ‘집의 배치와 공간 구성’이라는 내용적 측면이다. 둘째는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틀-‘뼈대와 지붕 모양’이라는 형식적 측면이다. 셋째는 ‘난방 및 건축 소재’로서의 기능적 측면이다. 한 마디로 현대 ‘우리 살림집’의 내용과 형식, 기능은 어떠해야 할까라는 정형을 찾아가는 일이다.
(1) ‘집의 배치와 공간 구성’이라는 내용적 측면에서 우리 ‘살림집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다. 농경사회에 맞도록 채(대문채, 사랑채, 안채, 곳간, 외부 화장실)와 마당으로 배치된 집의 형태는 주거기능만을 담는 단독주택, 집합건물, 아파트로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소가족 문화와 함께 가족 공동체성을 중시하는 한옥 살림집 정신은 파괴되었다.
우리의 살림집을 들여다보자. 길이 닿으면 집이 있고, 이웃하여 마을이 되었다. 각각의 살림집은 야트막한 담이 있어 서로를 구분하지만 폐쇄적이지 않았다. 눈인사를 건네고, 지나다가도 쪽마루에 걸터앉아 서로의 안부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우리네 민가, 마을의 모습이었다. 집은 높지 앉아 토방 하나를 딛고 오르면 대청마루였다. 마당은 농작물을 타작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혼인과 장례를 치루는 공공의 장소이기도 했다. 기존 마을과 동떨어져 높은 산을 뭉개고 들어선 요즘의 전원주택들은 그래서 우리네 농촌주택으로서는 화합할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인 것이다. 서울 도심의 부촌 단독주택을 흉내 내기라도 하듯 그렇게 지어지는 집들은 우리 농촌을 멍들게 할 뿐이다. 이웃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택지조성과 집의 배치는 농촌을 농촌답게 하고, 공동체로서의 전통을 이어가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공간 구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가족의 대소사는 구성원 개별의 방으로 해소되었다. 거실이라는 형태로 한옥의 대청마루 기능이 일정정도 계승되고는 있으나 TV가 주인이 되어버린 거실은 휴게실 기능 이상이 아니다. 사랑채의 주인이던 아버지들의 공간은 없어졌으며, 늦은 밤 거실에 홀로 앉아 리모콘으로 TV 채널만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양식 서재만이 부유한 집의 상징 같은 것일 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랑방에 불을 밝힐 여력은 정말 없어 보인다. 지금의 안방 또한 침실 기능 이상이 아니다. 옛 살림집의 안주인은 안채(안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양육하였다.
어쩌면 부부가 모두 일터로 나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학원으로 과외수업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집은 그저 밥 먹고 잠을 자는 숙식 장소 그 이상일 수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이며,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그 해답은 너무나 명백하다. 참 잘못 살고 있다 느껴지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앉아 고민을 나누고 가족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 이른바 대청마루의 정신적 복권이 필요하다. 현대 주택에 남자의 공간인 사랑방을 담을 수 없다면 아버지의 중심을 세울 수 있는 공간으로서 대청마루 기능을 거실에 담아낼 수 있다. TV는 거실 한 편이나 안방으로 밀어내고, 쇼파를 치워야 한다. 차탁 같은 탁자를 거실 중앙에 놓은 후 가족이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이 아니라도, 신문이 아니라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 한 잔을 놓고 이야기 나누는 공간으로 변화되면 자연히 아이들도 함께 하는 공간으로 변화된다.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도록 대청(거실)의 앞, 뒤에 창을 내고 쪽마루를 딛고 나가면 마당인 주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살리 듯 대청마루(거실)의 천장은 한옥의 오량천장 형태로 되살리는 것도 필요하다. 전통적인 정서에 한걸음 다가가는 길일 테니까.
안방은 안주인만의 공간(육아, 휴식, 명상...)과 침실 기능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안 살림만이 아니라 사회활동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안주인을 위한 공간 배려가 특히 필요하다. 전원주택 용도라면 안방이나 주방 한 편에 아내를 위한 독립적인 방(안채)을 두는 것도 생각 해 볼 일이다. 자녀들의 방은 폐쇄적이기 보다 개방형태가 바람직하다. 공부하는 자녀들은 도심에서 생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자녀가 어리거나 성숙한 단계에서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평상시에는 손님방으로 활용하고, 작게 구들방을 들여 현대병을 치료하는 공간으로 두어도 좋을 일이다.
이렇듯 대청마루(거실)와 방을 중심으로 하여 주방과 화장실 등 기능적 공간을 배치하는 것으로 한 채 안에 ‘공간 채 나눔’을 할 수 있다. 방이나 거실, 주방이라는 공간 개념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채’로서의 독립성 또한 보장하는 일이다. 아파트 생활공간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내부 공간은 현대주택이지만 각 공간이 담고 있는 독립성과 공동체성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은 한옥 살림집 정신의 현대적 계승인 것이다.
(2) 우리 살림집 정신의 내용(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뼈대와 지붕 모양(집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야 한다. 사람도 그 사람이 서양인인지 동양인인지,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일차적으로 외모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한옥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집의 골조를 이루는 구조-뼈대 방식과 지붕 모양일 것이다. 건축법상 구조 방식은 철근콘크리트조, 조적조, 철골조, 목조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옥은 말하자면 목조 건축물에 속한다. 다만 서양의 목조와 구분하여 한옥 목구조라 부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서양의 목조는 가공 조립이지만 한옥 목구조는 사괘맞춤이라는 가구(架構)방식이다. 한옥의 공간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하나의 공간으로 삼는데 초가삼간(草家三間), 아흔 아홉 간하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공간 구성에서 기인한다. 집을 짜는 기본은 민가에서 사용되었던 민도리집 방식이다. 얼개(짜임)는 ‘지붕-서까래-도리-보-기둥-기초’로 짜여져 있다. 처마의 구성과 지붕 모양에 따라 결구하는 도리(뼈대의 좌우를 연결하는 부재)와 보(뼈대의 앞 뒤를 연결하는 부재)가 달라지는 것이다. 건축물의 규모와 용도에 따라 부재가 달라지기도 한다. 맞춤은 사갈 튼다는 표현대로 기둥위에 홈을 따 보와 도리가 사괘맞춤으로 결속된다. 기둥, 도리, 보의 사괘맞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축과 변형을 거듭하지만 견고히 짜 맞추어진 뼈대는 수십, 수백 년을 견디며 지붕을 받치고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닮아 있는 집이다. 철물과 피스로 조립하는 서구 목조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서양의 집과 한국인의 집을 구분하는 첫 느낌이 지붕 모양인데 우리 살림집의 지붕모양도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집의 규모와 용도 등에 따라 처마의 길이와 모양이 달라 각 건축물의 느낌이 달랐고,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우진각 지붕 등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가공 조립의 경량 건축물에 적합한 지붕 소재가 아스팔트 슁글 이듯이 우리 건축물의 뼈대에는 기와와 초가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건축물들이 그들 나름의 평판 기와가 있던 점과 다르지 않다.
다만 삼량집(도리가 세 개인 규모가 작은 건축물), 오량집(도리가 5개인 일반적인 한옥) 등 한옥의 형식이 칸(間)이라는 제약(칸은 기둥과 기둥사이의 길이와 공간의 면적 개념을 동시에 갖는다)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에 따른 지붕 모양이 현대적인 공간 구성의 제약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또 하나 한옥은 구들 난방 중심이었기에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2층이나 복층 건축물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대적인 공간 구성(복층을 포함하여)에 사괘맞춤의 민도리집 뼈대 방식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와 그에 따른 지붕 모양을 한옥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바로 이점이 현대 한옥으로의 발전 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가능할까. 가능하다. 한옥의 겹집(측면 2칸 형태)형태를 응용한 현대주택 설계가 가능하다. 거실 등 폭과 길이가 커진 공간에 있어서는 간(기둥과 기둥 사이)에 샛기둥을 또 하나 세우는 방식으로 구조적 안정을 취하면 된다. 넓어진 내부 공간의 구획을 기둥으로 구분하면 된다. 폭과 길이가 넓어진 현대 건축물에 있어 굳이 오량이니 칠량이니 하는 지붕 구성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 처마 도리와 중도리만을 고려해 서까래로 처마를 내고 전체적인 지붕 모양은 건물 전체의 지붕 모양을 고려하여 덧지붕 형태로 재구성하면 되는 것이다. 지붕 모양에 있어서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구들 난방에서 배관 방식의 난방으로 변화된 현재에 있어서는 2층이나 복층 같은 살림집도 문제가 아니다. 뼈대 방식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다. 현대 건축물처럼 층 별 분리 형태를 취해 2층(복층) 바닥을 형성하고 그 위에 간이 주추와 나무 기둥을 세우는 방식이 가능하다. 2층 바닥 난방이 용이하기 위해서는 이 방식이 보편적일 수 있다. 아니면 1층 기둥위에 사괘맞춤으로 2층 기둥을 세우거나 2층이 구성되는 부분을 고주(외곽 기둥보다 높은 안 기둥)로 세우고 맞춤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문제는 지붕과 처마의 구성이 그대로 노출되던 한옥만의 정겨움, 특히 대청마루의 오량천장 느낌을 재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둥과 도리 보와 접한 흙벽과의 틈새와 특히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의 틈으로 발생하는 한기(전통한옥은 웃풍으로 겨울에 춥다)-단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현대 한옥을 예전의 한옥과 구별하는 핵심적 내용이다. 기둥과 기둥을 잡아주고 벽체형성을 용이하게 했던 하방, 중방, 상방을 없에고 심벽방식의 흙 벽체에서 흙벽돌 이중 쌓기 벽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거실의 오량천장은 지붕을 짜기 전에 거실 공간 그 자체만으로 중도리와 중보, 종도리로 오량을 형성해 그 자체의 오량 천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 위로 덧지붕을 형성하면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의 외부 공기를 내부의 오량천장이 막아주게 된다. 방은 아늑한 공간성을 살리기 위해 평천장으로 하되 단열과 석고보드 이중 마감으로 현대주택의 주거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평면의 짜임에 일정 제약을 받기도 하지만 덧지붕으로 지붕을 형성하는 방식은 지붕 모양의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게 된다. 아- 한옥이구나 하는 느낌을 살리기엔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가 제격이다. 한식기와가 무겁다고 느껴지는 현대인이라면 맞배지붕에 평판기와(양식기와)가 현대식 느낌을 줄 수 있다. 아스팔트 슁글 지붕은 뼈대에 비해 지붕이 얇아 보이는 단점이 있으나 우진각 지붕형태로 야트막한 지붕모양을 연출하면 초가집 형태의 변화된 현대한옥 맛을 느낄 수도 있다. 돌 너와나 너와(나무 기와) 등 다양한 지붕재의 결합 또한 가능하다.
한 번 더 정리하면 이렇다. 현대적 공간 구성에 맞도록 기둥의 위치를 공간화 하여 도리와 보로 짜임 한다.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이용하여 처마를 구성한다. 거실은 대청마루 형태의 오량천장을 별도로 구성한다. 그 뒤 전체의 지붕은 덧지붕으로 짠다. 2층(복층)일 경우 바닥 장선을 목재로 구성하고 바닥을 형성한 후 난방을 고려하여 별도로 뼈대를 세우고 지붕을 구성한다. 전체적인 느낌은 한옥이되 현대주택으로서의 구조와 지붕모양, 단열 문제를 함께 보완하는 것, 바로 현대한옥인 것이다. 산업 사회에 맞는 우리 살림집으로서의 현대 한옥이다.
(3)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흙, 흙집 기능을 대안건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서양의 건축물은 벽체 자체가 골조(뼈대) 역할을 하는 것에 반해 한옥은 뼈대와 지붕을 형성하고 나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흙으로 채워 벽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유럽의 건기지방이나 호주 등에서는 흙 담 자체로 구조체를 세우는 담틀공법이 발달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도 담틀집이라는 형태가 존재하지만 대중화된 공법은 아니다. 부속건물(대표적으로는 담배 건조장)이나 창고 등을 흙벽돌만으로 짓기도 하였지만 이는 일제 시대 이후의 일이다. 이렇듯 초가삼간이라도 기둥과 도리, 보로 뼈대를 짜고 서까래로 처마와 지붕을 만드는 집들이 보편적이었던 것은 여름과 겨울을 나기 위한 내구성과 기능성을 살린 삶의 지혜였다고 보여 진다. 곧 뼈대는 나무이고 벽체의 살은 흙이었던 셈이다.
흙벽은 인간의 옷이나 피부와 같은 기능을 한다. 바람이 잘 통하고 보온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굽지 않은 흙(흙벽)은 그 자체로 공기를 통하며, 습도를 조절하고, 탈취작용을 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열을 받으면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을 방사하여 인체의 생체리듬을 활성화시킨다는 결과도 있다. 구들 황토방이 현대인에게 찜질방 형태로 각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콘크리트 주택과 흙집의 비교실험에서 각각의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 놓고 쥐의 생육 실험을 한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생장과 활달성에서 흙집의 우수성이 눈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방식의 흙벽(심벽)방식을 그대로 현대 건축물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심벽 방식의 한옥은 나무 기둥과 기둥 사이에 수수대나 싸리나무, 대나무나 각재로 가로 외를 엮어 힘살을 만들었다. 짚과 흙을 섞어 안과 밖에서 초벽을 치고, 보다 고운 흙으로 재벽미장을 한 후 회벽미장으로 마감하거나 구운흙으로 새벽 미장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 건축 소재로서의 생태주택이기는 하지만 나무 기둥도 수축하고 흙벽도 수축하여 종래에는 그 틈으로 마당이 보이는 겨울철 단열에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다. 창틀 문틀과 흙벽 사이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데다 겨울철 난방을 고려하여 창을 작게 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기도 하다. 흙 벽체의 두께도 겨우 12~15cm 정도로 외기를 차단하기엔 부족하였다. 현대 건축물의 벽체 두께가 30~36cm인 점에 비추어 보면 흙벽체가 아무리 단열 기능이 높다 하여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단열기능을 갖추고 현대 건축물의 창호 기능(전망과 단열)을 보완하자면 흙벽 자체의 보완이 절대적이다. 그러한 필요에서 적용된 것이 나무 기둥 사이에 심벽방식 대신 흙벽돌로 벽체를 쌓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나무 기둥의 질감을 살리기 위하여 8치(약 24cm) 기둥에 안쪽으로 폭 20cm 정도의 흙벽돌을 쌓는 방식이 시도 되었고, 나무 기둥이 수축하며 발생하는 틈(흙벽돌은 진공압착으로 제작되어 수축이 현저하게 줄었음)을 보완하고 단열을 강화하기 위하여 내부에서 나무 기둥까지를 감싸 작은 흙벽돌(폭 10cm)을 한 장 더 쌓아주는 이중 흙벽돌 쌓기로 변화되었다. 이 방식은 내부에서 도리 위까지 작은 흙벽돌을 쌓음으로써 도리와 흙벽 사이의 이음매 틈 문제도 보완하는 효과를 얻었다. 창호문제에 있어서도 가창 틀을 사용하여 외부에는 섀시, 내부에는 목창 형태의 이중창을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외벽의 창 틀 하단부는 전돌(까만 벽돌)이나 치장 벽돌로 마감하여 장마나 태풍에도 대비하면서 양반 가옥의 느낌을 되살리는 효과도 얻게 되었다.
심벽 방식의 흙 벽체 방식을 흙벽돌 이중 쌓기로 변화시킨 점은 한옥과 현대 한옥을 구분 짓는 핵심적 요소다. 전통한옥을 고집하는 분들에겐 이러한 방식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직사각 형태의 흙벽돌과의 결합문제로 인해 원형기둥이나 굴도리, 뼈대의 짜임을 한옥답게 하던 하방, 중방, 장혀 등이 불필요해져 전통한옥의 맛을 퇴색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찰이나 사당, 문화재 보수 등에 치우쳐 있던 한옥 목수들은 예전의 방식들을 고집하며 여전히도 전통한옥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의례적 건축물(사찰, 사당)이나 문화재에 있어서는 살림집에서 요구되는 단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살림집으로서의 한옥이 갖추어야 할 단열(창호문제를 포함하여)문제는 현대 한옥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 때 사용되는 흙벽돌은 흙의 기능을 헤치지 않아야 한다. 구우면 성질이 변화되고 혼화제(회나, 시멘트, 경화제 등)를 사용하면 흙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흙 본래의 성질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모양이나 강도를 고려할 때 진공압착식의 황토벽돌이 적합하다. 건축 소재로서의 규격화와 대량생산 체제가 가능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 건조하여야 하며 물에 담아두었을 때 흙으로 돌아가는 천연성을 보존해야 한다.
또 하나 흙건축 소재로서 중요한 것이 미장용 황토 몰탈이다. 전통 한옥의 심벽 방식은 그 자체로 벽을 마감(새벽)했다. 방은 구들을 놓은 후 그 위에 진흙반죽으로 새침하고 세사(가는 모래)와 진흙을 반죽하여 미장한 후 잔 불을 때면서 갈라진 틈을 여러 번에 걸쳐 메우는 작업을 했다. 그 위에 콩댐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의 한지장판 마감을 하였던 것이다. 대청마루는 난방을 하지 않는 그 자체의 마루였다. 벽체가 흙벽돌로 바뀐 현대한옥에서는 내벽에 미장 마감이 필요해졌고, 흙벽 기능을 해치지 않는 황토 마감 소재(몰탈)이 필요해졌다. 또한 중심 난방이 보일러 설비를 통한 배관 난방 방식으로 바뀐 현대에서는 배관에서 열을 전달하는 황토 마감 소재(몰탈)가 필요해진 것이다. 진흙만으론 세사(가는 모래)를 섞는다하여도 갈라지고 터지는 흙의 성질을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다. 처음에는 회나 시멘트, 돌가루(맥반석) 등을 섞어 적용되던 것이 황토가루와 세사(가는 모래), 천연 소재의 고화제(나무 송진이나 고무나무 등의 진을 분말화 한 것)를 혼합한 몰탈 제품들이 개발되었다. 황토(진흙) 그 자체만으로 벽이나 바닥에 적용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이나 흙이라는 기본 성질상 천연소재를 통한 가공 황토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현대 건축물의 천장 마감재인 석고보드를 대신 할 황토보드 등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은 고무적이다. 이러한 흙건축 소재의 개발과 대량 생산화는 분명 현대 한옥, 현대 흙집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렇듯 흙집의 본래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대주택으로서의 기능(단열)을 보완해 나갈 때 우리 살림집은 현대 한옥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해 갈 수 있는 것이다. 흙건축 소재의 개발과 대중화는 살림집 건축만이 아니라 교육시설, 의료시설, 복지시설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나아가 새집 징후군 이라는 현대 건축물의 위해성을 친환경 건축 소재로 전환시켜가는 대안 건축의 길을 열 것이다.
한 민족의 ‘집’을 표현하는데 있어 기준이 되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첫째는 ‘집의 배치와 공간 구성’이라는 내용적 측면이다. 둘째는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틀-‘뼈대와 지붕 모양’이라는 형식적 측면이다. 셋째는 ‘난방 및 건축 소재’로서의 기능적 측면이다. 한 마디로 현대 ‘우리 살림집’의 내용과 형식, 기능은 어떠해야 할까라는 정형을 찾아가는 일이다.
(1) ‘집의 배치와 공간 구성’이라는 내용적 측면에서 우리 ‘살림집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다. 농경사회에 맞도록 채(대문채, 사랑채, 안채, 곳간, 외부 화장실)와 마당으로 배치된 집의 형태는 주거기능만을 담는 단독주택, 집합건물, 아파트로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소가족 문화와 함께 가족 공동체성을 중시하는 한옥 살림집 정신은 파괴되었다.
우리의 살림집을 들여다보자. 길이 닿으면 집이 있고, 이웃하여 마을이 되었다. 각각의 살림집은 야트막한 담이 있어 서로를 구분하지만 폐쇄적이지 않았다. 눈인사를 건네고, 지나다가도 쪽마루에 걸터앉아 서로의 안부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우리네 민가, 마을의 모습이었다. 집은 높지 앉아 토방 하나를 딛고 오르면 대청마루였다. 마당은 농작물을 타작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혼인과 장례를 치루는 공공의 장소이기도 했다. 기존 마을과 동떨어져 높은 산을 뭉개고 들어선 요즘의 전원주택들은 그래서 우리네 농촌주택으로서는 화합할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인 것이다. 서울 도심의 부촌 단독주택을 흉내 내기라도 하듯 그렇게 지어지는 집들은 우리 농촌을 멍들게 할 뿐이다. 이웃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택지조성과 집의 배치는 농촌을 농촌답게 하고, 공동체로서의 전통을 이어가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공간 구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가족의 대소사는 구성원 개별의 방으로 해소되었다. 거실이라는 형태로 한옥의 대청마루 기능이 일정정도 계승되고는 있으나 TV가 주인이 되어버린 거실은 휴게실 기능 이상이 아니다. 사랑채의 주인이던 아버지들의 공간은 없어졌으며, 늦은 밤 거실에 홀로 앉아 리모콘으로 TV 채널만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양식 서재만이 부유한 집의 상징 같은 것일 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랑방에 불을 밝힐 여력은 정말 없어 보인다. 지금의 안방 또한 침실 기능 이상이 아니다. 옛 살림집의 안주인은 안채(안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양육하였다.
어쩌면 부부가 모두 일터로 나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학원으로 과외수업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집은 그저 밥 먹고 잠을 자는 숙식 장소 그 이상일 수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이며,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그 해답은 너무나 명백하다. 참 잘못 살고 있다 느껴지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앉아 고민을 나누고 가족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 이른바 대청마루의 정신적 복권이 필요하다. 현대 주택에 남자의 공간인 사랑방을 담을 수 없다면 아버지의 중심을 세울 수 있는 공간으로서 대청마루 기능을 거실에 담아낼 수 있다. TV는 거실 한 편이나 안방으로 밀어내고, 쇼파를 치워야 한다. 차탁 같은 탁자를 거실 중앙에 놓은 후 가족이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이 아니라도, 신문이 아니라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 한 잔을 놓고 이야기 나누는 공간으로 변화되면 자연히 아이들도 함께 하는 공간으로 변화된다.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도록 대청(거실)의 앞, 뒤에 창을 내고 쪽마루를 딛고 나가면 마당인 주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살리 듯 대청마루(거실)의 천장은 한옥의 오량천장 형태로 되살리는 것도 필요하다. 전통적인 정서에 한걸음 다가가는 길일 테니까.
안방은 안주인만의 공간(육아, 휴식, 명상...)과 침실 기능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안 살림만이 아니라 사회활동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안주인을 위한 공간 배려가 특히 필요하다. 전원주택 용도라면 안방이나 주방 한 편에 아내를 위한 독립적인 방(안채)을 두는 것도 생각 해 볼 일이다. 자녀들의 방은 폐쇄적이기 보다 개방형태가 바람직하다. 공부하는 자녀들은 도심에서 생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자녀가 어리거나 성숙한 단계에서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평상시에는 손님방으로 활용하고, 작게 구들방을 들여 현대병을 치료하는 공간으로 두어도 좋을 일이다.
이렇듯 대청마루(거실)와 방을 중심으로 하여 주방과 화장실 등 기능적 공간을 배치하는 것으로 한 채 안에 ‘공간 채 나눔’을 할 수 있다. 방이나 거실, 주방이라는 공간 개념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채’로서의 독립성 또한 보장하는 일이다. 아파트 생활공간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내부 공간은 현대주택이지만 각 공간이 담고 있는 독립성과 공동체성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은 한옥 살림집 정신의 현대적 계승인 것이다.
(2) 우리 살림집 정신의 내용(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 뼈대와 지붕 모양(집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야 한다. 사람도 그 사람이 서양인인지 동양인인지,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일차적으로 외모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한옥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집의 골조를 이루는 구조-뼈대 방식과 지붕 모양일 것이다. 건축법상 구조 방식은 철근콘크리트조, 조적조, 철골조, 목조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옥은 말하자면 목조 건축물에 속한다. 다만 서양의 목조와 구분하여 한옥 목구조라 부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서양의 목조는 가공 조립이지만 한옥 목구조는 사괘맞춤이라는 가구(架構)방식이다. 한옥의 공간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하나의 공간으로 삼는데 초가삼간(草家三間), 아흔 아홉 간하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공간 구성에서 기인한다. 집을 짜는 기본은 민가에서 사용되었던 민도리집 방식이다. 얼개(짜임)는 ‘지붕-서까래-도리-보-기둥-기초’로 짜여져 있다. 처마의 구성과 지붕 모양에 따라 결구하는 도리(뼈대의 좌우를 연결하는 부재)와 보(뼈대의 앞 뒤를 연결하는 부재)가 달라지는 것이다. 건축물의 규모와 용도에 따라 부재가 달라지기도 한다. 맞춤은 사갈 튼다는 표현대로 기둥위에 홈을 따 보와 도리가 사괘맞춤으로 결속된다. 기둥, 도리, 보의 사괘맞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축과 변형을 거듭하지만 견고히 짜 맞추어진 뼈대는 수십, 수백 년을 견디며 지붕을 받치고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닮아 있는 집이다. 철물과 피스로 조립하는 서구 목조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서양의 집과 한국인의 집을 구분하는 첫 느낌이 지붕 모양인데 우리 살림집의 지붕모양도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집의 규모와 용도 등에 따라 처마의 길이와 모양이 달라 각 건축물의 느낌이 달랐고,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우진각 지붕 등 다양한 표정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가공 조립의 경량 건축물에 적합한 지붕 소재가 아스팔트 슁글 이듯이 우리 건축물의 뼈대에는 기와와 초가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건축물들이 그들 나름의 평판 기와가 있던 점과 다르지 않다.
다만 삼량집(도리가 세 개인 규모가 작은 건축물), 오량집(도리가 5개인 일반적인 한옥) 등 한옥의 형식이 칸(間)이라는 제약(칸은 기둥과 기둥사이의 길이와 공간의 면적 개념을 동시에 갖는다)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에 따른 지붕 모양이 현대적인 공간 구성의 제약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또 하나 한옥은 구들 난방 중심이었기에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2층이나 복층 건축물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대적인 공간 구성(복층을 포함하여)에 사괘맞춤의 민도리집 뼈대 방식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와 그에 따른 지붕 모양을 한옥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바로 이점이 현대 한옥으로의 발전 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가능할까. 가능하다. 한옥의 겹집(측면 2칸 형태)형태를 응용한 현대주택 설계가 가능하다. 거실 등 폭과 길이가 커진 공간에 있어서는 간(기둥과 기둥 사이)에 샛기둥을 또 하나 세우는 방식으로 구조적 안정을 취하면 된다. 넓어진 내부 공간의 구획을 기둥으로 구분하면 된다. 폭과 길이가 넓어진 현대 건축물에 있어 굳이 오량이니 칠량이니 하는 지붕 구성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 처마 도리와 중도리만을 고려해 서까래로 처마를 내고 전체적인 지붕 모양은 건물 전체의 지붕 모양을 고려하여 덧지붕 형태로 재구성하면 되는 것이다. 지붕 모양에 있어서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구들 난방에서 배관 방식의 난방으로 변화된 현재에 있어서는 2층이나 복층 같은 살림집도 문제가 아니다. 뼈대 방식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다. 현대 건축물처럼 층 별 분리 형태를 취해 2층(복층) 바닥을 형성하고 그 위에 간이 주추와 나무 기둥을 세우는 방식이 가능하다. 2층 바닥 난방이 용이하기 위해서는 이 방식이 보편적일 수 있다. 아니면 1층 기둥위에 사괘맞춤으로 2층 기둥을 세우거나 2층이 구성되는 부분을 고주(외곽 기둥보다 높은 안 기둥)로 세우고 맞춤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문제는 지붕과 처마의 구성이 그대로 노출되던 한옥만의 정겨움, 특히 대청마루의 오량천장 느낌을 재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둥과 도리 보와 접한 흙벽과의 틈새와 특히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의 틈으로 발생하는 한기(전통한옥은 웃풍으로 겨울에 춥다)-단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현대 한옥을 예전의 한옥과 구별하는 핵심적 내용이다. 기둥과 기둥을 잡아주고 벽체형성을 용이하게 했던 하방, 중방, 상방을 없에고 심벽방식의 흙 벽체에서 흙벽돌 이중 쌓기 벽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거실의 오량천장은 지붕을 짜기 전에 거실 공간 그 자체만으로 중도리와 중보, 종도리로 오량을 형성해 그 자체의 오량 천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 위로 덧지붕을 형성하면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의 외부 공기를 내부의 오량천장이 막아주게 된다. 방은 아늑한 공간성을 살리기 위해 평천장으로 하되 단열과 석고보드 이중 마감으로 현대주택의 주거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평면의 짜임에 일정 제약을 받기도 하지만 덧지붕으로 지붕을 형성하는 방식은 지붕 모양의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게 된다. 아- 한옥이구나 하는 느낌을 살리기엔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가 제격이다. 한식기와가 무겁다고 느껴지는 현대인이라면 맞배지붕에 평판기와(양식기와)가 현대식 느낌을 줄 수 있다. 아스팔트 슁글 지붕은 뼈대에 비해 지붕이 얇아 보이는 단점이 있으나 우진각 지붕형태로 야트막한 지붕모양을 연출하면 초가집 형태의 변화된 현대한옥 맛을 느낄 수도 있다. 돌 너와나 너와(나무 기와) 등 다양한 지붕재의 결합 또한 가능하다.
한 번 더 정리하면 이렇다. 현대적 공간 구성에 맞도록 기둥의 위치를 공간화 하여 도리와 보로 짜임 한다.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이용하여 처마를 구성한다. 거실은 대청마루 형태의 오량천장을 별도로 구성한다. 그 뒤 전체의 지붕은 덧지붕으로 짠다. 2층(복층)일 경우 바닥 장선을 목재로 구성하고 바닥을 형성한 후 난방을 고려하여 별도로 뼈대를 세우고 지붕을 구성한다. 전체적인 느낌은 한옥이되 현대주택으로서의 구조와 지붕모양, 단열 문제를 함께 보완하는 것, 바로 현대한옥인 것이다. 산업 사회에 맞는 우리 살림집으로서의 현대 한옥이다.
(3)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흙, 흙집 기능을 대안건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서양의 건축물은 벽체 자체가 골조(뼈대) 역할을 하는 것에 반해 한옥은 뼈대와 지붕을 형성하고 나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흙으로 채워 벽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유럽의 건기지방이나 호주 등에서는 흙 담 자체로 구조체를 세우는 담틀공법이 발달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도 담틀집이라는 형태가 존재하지만 대중화된 공법은 아니다. 부속건물(대표적으로는 담배 건조장)이나 창고 등을 흙벽돌만으로 짓기도 하였지만 이는 일제 시대 이후의 일이다. 이렇듯 초가삼간이라도 기둥과 도리, 보로 뼈대를 짜고 서까래로 처마와 지붕을 만드는 집들이 보편적이었던 것은 여름과 겨울을 나기 위한 내구성과 기능성을 살린 삶의 지혜였다고 보여 진다. 곧 뼈대는 나무이고 벽체의 살은 흙이었던 셈이다.
흙벽은 인간의 옷이나 피부와 같은 기능을 한다. 바람이 잘 통하고 보온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굽지 않은 흙(흙벽)은 그 자체로 공기를 통하며, 습도를 조절하고, 탈취작용을 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열을 받으면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을 방사하여 인체의 생체리듬을 활성화시킨다는 결과도 있다. 구들 황토방이 현대인에게 찜질방 형태로 각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콘크리트 주택과 흙집의 비교실험에서 각각의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 놓고 쥐의 생육 실험을 한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생장과 활달성에서 흙집의 우수성이 눈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방식의 흙벽(심벽)방식을 그대로 현대 건축물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심벽 방식의 한옥은 나무 기둥과 기둥 사이에 수수대나 싸리나무, 대나무나 각재로 가로 외를 엮어 힘살을 만들었다. 짚과 흙을 섞어 안과 밖에서 초벽을 치고, 보다 고운 흙으로 재벽미장을 한 후 회벽미장으로 마감하거나 구운흙으로 새벽 미장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 건축 소재로서의 생태주택이기는 하지만 나무 기둥도 수축하고 흙벽도 수축하여 종래에는 그 틈으로 마당이 보이는 겨울철 단열에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다. 창틀 문틀과 흙벽 사이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데다 겨울철 난방을 고려하여 창을 작게 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기도 하다. 흙 벽체의 두께도 겨우 12~15cm 정도로 외기를 차단하기엔 부족하였다. 현대 건축물의 벽체 두께가 30~36cm인 점에 비추어 보면 흙벽체가 아무리 단열 기능이 높다 하여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단열기능을 갖추고 현대 건축물의 창호 기능(전망과 단열)을 보완하자면 흙벽 자체의 보완이 절대적이다. 그러한 필요에서 적용된 것이 나무 기둥 사이에 심벽방식 대신 흙벽돌로 벽체를 쌓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나무 기둥의 질감을 살리기 위하여 8치(약 24cm) 기둥에 안쪽으로 폭 20cm 정도의 흙벽돌을 쌓는 방식이 시도 되었고, 나무 기둥이 수축하며 발생하는 틈(흙벽돌은 진공압착으로 제작되어 수축이 현저하게 줄었음)을 보완하고 단열을 강화하기 위하여 내부에서 나무 기둥까지를 감싸 작은 흙벽돌(폭 10cm)을 한 장 더 쌓아주는 이중 흙벽돌 쌓기로 변화되었다. 이 방식은 내부에서 도리 위까지 작은 흙벽돌을 쌓음으로써 도리와 흙벽 사이의 이음매 틈 문제도 보완하는 효과를 얻었다. 창호문제에 있어서도 가창 틀을 사용하여 외부에는 섀시, 내부에는 목창 형태의 이중창을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외벽의 창 틀 하단부는 전돌(까만 벽돌)이나 치장 벽돌로 마감하여 장마나 태풍에도 대비하면서 양반 가옥의 느낌을 되살리는 효과도 얻게 되었다.
심벽 방식의 흙 벽체 방식을 흙벽돌 이중 쌓기로 변화시킨 점은 한옥과 현대 한옥을 구분 짓는 핵심적 요소다. 전통한옥을 고집하는 분들에겐 이러한 방식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직사각 형태의 흙벽돌과의 결합문제로 인해 원형기둥이나 굴도리, 뼈대의 짜임을 한옥답게 하던 하방, 중방, 장혀 등이 불필요해져 전통한옥의 맛을 퇴색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찰이나 사당, 문화재 보수 등에 치우쳐 있던 한옥 목수들은 예전의 방식들을 고집하며 여전히도 전통한옥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의례적 건축물(사찰, 사당)이나 문화재에 있어서는 살림집에서 요구되는 단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살림집으로서의 한옥이 갖추어야 할 단열(창호문제를 포함하여)문제는 현대 한옥의 성패를 좌우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 때 사용되는 흙벽돌은 흙의 기능을 헤치지 않아야 한다. 구우면 성질이 변화되고 혼화제(회나, 시멘트, 경화제 등)를 사용하면 흙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흙 본래의 성질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모양이나 강도를 고려할 때 진공압착식의 황토벽돌이 적합하다. 건축 소재로서의 규격화와 대량생산 체제가 가능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 건조하여야 하며 물에 담아두었을 때 흙으로 돌아가는 천연성을 보존해야 한다.
또 하나 흙건축 소재로서 중요한 것이 미장용 황토 몰탈이다. 전통 한옥의 심벽 방식은 그 자체로 벽을 마감(새벽)했다. 방은 구들을 놓은 후 그 위에 진흙반죽으로 새침하고 세사(가는 모래)와 진흙을 반죽하여 미장한 후 잔 불을 때면서 갈라진 틈을 여러 번에 걸쳐 메우는 작업을 했다. 그 위에 콩댐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의 한지장판 마감을 하였던 것이다. 대청마루는 난방을 하지 않는 그 자체의 마루였다. 벽체가 흙벽돌로 바뀐 현대한옥에서는 내벽에 미장 마감이 필요해졌고, 흙벽 기능을 해치지 않는 황토 마감 소재(몰탈)이 필요해졌다. 또한 중심 난방이 보일러 설비를 통한 배관 난방 방식으로 바뀐 현대에서는 배관에서 열을 전달하는 황토 마감 소재(몰탈)가 필요해진 것이다. 진흙만으론 세사(가는 모래)를 섞는다하여도 갈라지고 터지는 흙의 성질을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다. 처음에는 회나 시멘트, 돌가루(맥반석) 등을 섞어 적용되던 것이 황토가루와 세사(가는 모래), 천연 소재의 고화제(나무 송진이나 고무나무 등의 진을 분말화 한 것)를 혼합한 몰탈 제품들이 개발되었다. 황토(진흙) 그 자체만으로 벽이나 바닥에 적용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이나 흙이라는 기본 성질상 천연소재를 통한 가공 황토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현대 건축물의 천장 마감재인 석고보드를 대신 할 황토보드 등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은 고무적이다. 이러한 흙건축 소재의 개발과 대량 생산화는 분명 현대 한옥, 현대 흙집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렇듯 흙집의 본래 기능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대주택으로서의 기능(단열)을 보완해 나갈 때 우리 살림집은 현대 한옥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해 갈 수 있는 것이다. 흙건축 소재의 개발과 대중화는 살림집 건축만이 아니라 교육시설, 의료시설, 복지시설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나아가 새집 징후군 이라는 현대 건축물의 위해성을 친환경 건축 소재로 전환시켜가는 대안 건축의 길을 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