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생태건축 - 새로운 관계맺기
생태건축, 집짓기의 새로운 희망 찾기 버려진 것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애틋한 첫사랑의 감동처럼 물밀듯 찾아와 현재적 상황을 덮칠 때가 있다. 이는 못내 아쉬운 과거에 대한 추억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형태의 반성이며 오늘과의 접목일 때 적극적 원동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황토 주택이나 토담집에 대한 회귀가 유행병처럼 번져 나가고 현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물리적, 정신적 치유의 주거적 대안으로 전원 주택의 형식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은 분명 고마워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대중 건축으로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던 토담집이 그들의 삶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하면서 진화되어온 역사를 통하여 훑어보면 지금 도시인들이 흉내내는 토담집은 왠지 어색하지 이를 데 없다. 이는 형식은 그와 같으되 내용이 왜곡되거나 명분이 극히 인위적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전통적 당위성도 살리고 건강도 좋아진다는데 무슨 사설이 있을 수 있겠냐마는 자연 속에서 삶과 진리를 함께 추구하던 선조들의 본뜻을 헤아리며 현대적 미학에 편입시켜 살려 낼 수 있다면 더욱 훌륭한 주거 형식으로서의 토담집 또는 건강하고 쾌적한 생태적 건축으로 자리 매김 될 수 있지 않을까? 집은 우리의 시간과 더불어 세월의 더께를 더하며 흐르고 인간은 집이라는 공간적 틀 속에서 주위 환경과 우주의 삼라만상과의 소통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주가 '집 우(宇)'와 '집 주(宙)'로 쓰이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드넓은 우주 안에 집 한 채 들이는 일은 인간과 집이라는 한정된 관계로 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자연적이고 생태계를 포괄하는 이치가 함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살림살이 속도가 너무 바삐 이행되어가고 있어서 전통적 의미에서의 주거문화는 급속한 일탈과정을 겪고 있다. 이에 재래적으로 내려오던 공동체적 마을과 집에 대한 의미도 개인적 안식과 상징으로 일방향성을 지향하게 되어 인간의 건강 추구와 자연생태계에 닫힌 체계로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 우리의 전통적 집짓기에서는 목구조와 흙구조를 조합하여 삶의 규모와 형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삶의 형식과 근대의 산업화된 재료의 발견에 의해 그 틀거리가 해체·소멸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주거의 형식과 재료적 전이에 대한 논의 이전에 이 작업에서는 재래적 구법에 의한 현재적 가능성을 실험하고 대중성에 대한 검토를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인류의 최초의 건축재료가 나무와 흙이었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듯이 흙건축 또한 인류의 최고의 도시인 여리고와 바빌로니아도 흙으로 지어졌다. 뿐만 아니라 극심한 사회적 변혁기를 겪던 18세기의 프랑스에서 코앵트로의 연구와 세계 제2차대전 후에 제3세계에서 흙건축은 주거문제에 대응하는 대안으로 실천하였다. 이에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적 차원과 건강하고 쾌적한 주거의 대안으로 흙과 나무로써 생태적 집짓기의 전형성에 대한 작은 결과이기도 하다.
세진당을 통해 보기 이러한 의미에서 시도한 <세진당(본지 0111호 게재)> 주택은 우리의 전통건축의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현대적 삶의 형식을 온전히 받아 안으면서 전통적 건축철학과 방식을 투영하여 새로운 주택의 형식을 위하여 쾌적한 생태적 건축을 제안하고자 한 작업이다. 이 집은 60대 노부부의 전원생활을 위한 오대산 자락의 소금강 부근에 지은 주택이다. 유난히 남북의 좁고 긴축을 가진 대지의 특성과 동쪽 산머리에 있는 매바위를 향해 집을 앉히는 마을 풍습에 의해 자연스레 건물의 방향을 동향으로 잡았다. 본 채 중앙부의 현관과 사랑방 사이에 대청마루를 두듯이 데크 공간을 비워둠으로써 앞뜰과 뒤뜰을 소통함과 동시에 본채와 사랑채를 매개하고자 했다. 우리의 전통적 자연관은 대지에 있는 대상된 조경에 국한하지 않고 그 시야를 조산과 안산을 품 넓게 아우르며 주위의 자연을 마당과 건물내부로 끌어들여 해석하였다. 나그네가 호기심 가득 쭈삣 거릴 수 있는 적당히 높은 담장, 먼 산이 머릴 드밀듯한 닫힌 듯 열린 개구부, 건물의 앉은 다소곳한 폼새와 경관속에 스며들 수 있는 아담한 크기, 그러나 때론 앞산 뒷산을 불러들여 앞마당에 부려놓는 호쾌한 배치가 우리 건축의 멋이고 풍류였다. 앞뜰 - 대청(데크공간) - 뒤뜰로 연결되는 깊이 있는 보이드공간과 서향을 등지고 동향을 쬐고 있는 폭 좁은 공간은 동쪽으로 끊임없이 확장되어 감나무숲과 텃밭을 지나고 계곡 밑 맑은 개울로 닿고자하는 희망이 담겨있다. 이는 옛 선조들의 여유와 느림의 무위사상을 공간에 투사하여 은퇴하신 60대 노부부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노후의 바람이 담겨 있기도 하다. 안주인 사랑방을 가사공간과 닿아 있으면서도 집안 살림이 전체를 관장할 수 있는 위치
에 중심적으로 위치하며 바깥주인 사랑방은 서예활동이나 손님맞이에 적절하게 별채에 독립적으로 놓여졌다. 주요 구조부는 목재와 흙으로 되어 있다. 벽체는 자연소재인 흙벽돌을 두겹으로 공간 쌓기를 하였다. 즉 목재기둥과 흙벽돌을 이용하여 벽체를 구성하였고 지붕구조는 무겁고 위압적인 재래식 한옥지붕을 벗어 던지고 경량경골목구조로 경량감과 현대성을 추구하는 구법으로 개량화 하였다. 또한 환경친화적이고 무해한 소재인 목재와 흙을 주재료로 사용하였고 내부 벽체에서 흙이 묻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화학성 벽지를 피해 한지를 오려서 낱낱이 줄눈을 드러나게 하였다. 우리 것은 불편하고 투박한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떨쳐주기 위해 기존의 흙벽돌 쌓기인 구조용 막힌 줄눈을 통줄눈으로 재해석하여 세련되고 완결성이 돋보이게 하는 미관상의 효과를 시도하였다. 물의 소중함을 몸소 느낄 수 있도록 경사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은 물홈통을 설치하여 장독대 밑의 우수 저장탱크로 저장되어 세차 및 허드렛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고 대체에너지인 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기(500w)를 설치하여 에너지 절약을 도모하였다. 자연 순환적 재료 및 에너지, 미기후를 이용한 건물배치, 에너지 절약형 배치와 우수 재사용, 단열 및 방습에 대한 고려 등으로 건강하고 쾌적한 주거환경 만들기를 목표로 계획된 이 프로젝트는 거주 후 평가의 단계를 거치면서 차차 완성 될 것이다.
건강한 집짓기는 생태적 순환의 틀 속에서 비롯되어야 무릇, 집짓기란 자연 지형물의 피난처에서 움막을 짓고 모듬살이를 시작하면서 인류가 창조적 노동의 집적물로써 만들어 낸 최초의 형상적 언어이며 문화적 산물이다. 이에 우리의 집짓기에 대한 생태적 화두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른바 산업사회가 이행되기 이전의 우리 선조들은 자연적 재료를 이용해서 이 땅에 어울리는 건축미학을 체계화 해왔으며 수채구멍에 사는 미물을 생각하여 개수물조차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생활철학을 지키며 살아왔다. 이십세기에 와서 서구의 합리주의와 모더니즘적 사고가 우리의 산업의 기반을 변화시키고 삶의 형식을 바꾸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소위 서구화의 일단의 폐단을 알면서도 어느 정도는 돌이킬 수 없음과 이미 몸에 배여 일상화 된 부분도 있음을 안다. 그렇다고 하여 그 이전의 삶의 형식과 주거생활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복고주의도 일견 경계할 수밖에 없는지라 이 시대에 찾아야 할 적절한 집짓기와 거주하기의 새로운 담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세계 인구의 3할 이상이 흙 건축에 살고 있는 점을 눈여겨본다면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단열재 없이도 여름에 시원하고 따뜻하다. 눈비 올 때는 수분을 흙벽 속으로 흡수하고 흙벽은 태양에너지를 환경 여건에 따라 축열하거나 방열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어서 건조할 때 내뿜어서 방안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서양의 벽난로나 공냉식 난방법과는 달리 구들을 사용하여 온돌에 한 번 불을 대면 나선형 구들, 亞자형 구들 등 절묘한 구들골을 따라 집열과 축열이 되어 장시간 보온이 되는 동시에 원적외선이 비축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한 시대부터 혈거생활을 영위하였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죽음이후에는 흙으로 빚은 옹기관에 넣어서 대지로 되돌려졌다. 그리고 옹기 문화가 발달하여 집집마다 질그릇, 황토 항아리 등에서 호기성균이 왕성하게 번식하여 김치, 간장, 된장을 발효시켜 먹었으니 흙과 더불어 발달시켜 온 생활이 얼마나 자연친화적이며 과학적이었는지를 짐작해 봄직하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우리 선조들이 흙을 주생활에 재료로 사용하게 된 것을 흙의 과학성보다는 자연속에서 손쉽게 구한 흙으로 생활의 도구를 찾으려고 했던 환경친화적 생활방식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옛 것은 낡은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맹목성 때문에 근대화라는 이름 하에 철저히 파괴되고 따돌려졌던 흙건축! 도시자본가들을 위한 새마을 운동은 짚풀로 이엉을 엮어만든 자붕을 걷어내고 석면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고, 흙벽은 시멘트 불록으로 대체되어 몇 십년을 지내온 것이다. 산업화라는 명분으로 전통적 주생활 문화는 단절을 겪게 되었고 패스트푸드식 생활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흙 건축을 현대 주거 생활에 복귀시키기에는 몇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토담집이 구성할 수 있는 공간의 규모가 현대인들의 생활과 잘 맞지 못하는 점이다. 좁은 대지에 이, 삼층으로 건축해야 할 경우
와 넓은 공간의 실이 필요할 때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기술과 재료를 적극 사용하여 기술적으로 보완해나갈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또 한가지는 주거 생활의 내용적 측면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유하고 대지에 도발을 딛고 생활하기에 알맞게 발전하고 계승된 토담의 흙건축이 단지 건강에 좋다는 측면만 부각시켜 법썩을 떠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스스로가 자연 앞에 겸손해져야 하며 선조들의 자연관을 되새겨 모나고 획일적 문명의 이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사의 거처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이는 의식적이 측면과 더불어 환경의 재생이라는 전 인류적 운동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개수물을 도랑에 버리면서도 그 속에 사는 벌레들을 생각하며 뜨거운 물을 식혀서 버리건 선대의 환경 공동체적 습성을 이어받아 인간주의 이기심을 버린다면 흙속에 깃들어 살고자하는 인간이 만드는 토담집도 건축 환경의 대안일수도 있을 것이다.
창조적 파장을 위하여 진정 봄날은 가고 다시 오지 않을 것인가? 미국의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라고 환경 오염의 재앙을 경고 한 바 있지만 대지를 호흡하려 옴싹거리며 생동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질 생명 움트는 봄을 미래의 대지에 무분별한 건축으로 인해 침묵하게 하고 말 것인가? 인간의 쾌적하고 건강한 집짓기는 자연에 대한 배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자연이 인간의 집짓기와 거주하기의 이기심에 의해 본래의 기능을 다해주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의 주거공간이 파괴되고 우리인간의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 추구는 더욱 멀어 질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강하고 쾌적한 생태적 건축은 무엇보다 지구 생태계가 건축물과 전체, 개체로서의 집과 환경이 서로 유기적 통일체라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에 우리의 새로운 대안으로써의 생태건축은 건축이 자연을 배려하고,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문명의 속도를 조절하여 자연과 건축이 서로의 위안 일 수 있는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