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바람 게시판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 날이다 - 영화감독 전계수
보고 느끼고
2008. 12. 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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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처음 요코하마에 발을 디뎠을 때는 낯선 땅에서 견문도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풍부한 경험들을 많이 하리라 부푼 가슴에 하루하루가 설레임의 나날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설레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3달이 지나서부터는 그날이 그날 같은 직장 생활에 조금씩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아는 한국인 하나 없이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많이 외롭기도 했구요.
당시 유일한 낙은 주말 내내 소파에서 뒹굴면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영화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 영화는 물론이고 한국에 있을 때는 찾아보지 않던 우리의 고전 영화들도 꽤 많이 보게 되면서 영화에 조금씩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이용하던 비디오 숍에 <아메리칸 뷰티>라는 신작 영화가 들어왔습니다. 영화가 뿜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보던 중, 한 대사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 날이다.
동네 이발소에 걸린 액자 속 붓글씨처럼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 문구는 당시 도전도 창의도 없는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던 제게 어떤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즈음부터 퇴근하고 돌아와 시나리오를 쓰는 일을 시작했고,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조금씩 키워나가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어느 시인의 시 구절에서 온 것으로 60년대 히피들의 일상적 구호이기도 했던 이 말은, 삶의 변화를 원했던 일본직장시절 뿐 아니라 영화 일을 하는 현재까지도 가장 준엄한 위로이자 가장 부드러운 명령으로 제 인생의 한마디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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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전계수 |
새로운 감각의 뮤지컬 영화 <삼거리극장>으로 제4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전계수 감독은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단편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바 있습니다. 현재 새 영화 ‘러브픽션’의 촬영준비 중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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