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2004년 겨울, 인도 캘커타의 한 도미토리 숙소에서 "아리랑~아리랑~"을 불러주며 한국을 알고 싶으면 '서편제'라는 영화를 꼭 봐 라고 하던 한 한국인이 생각난다.
서편제는 우리민족 우리소리의 한과 정서가 담긴 '판소리'를 영화로 그려낸 수작으로써 1994년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서울 100만 명의 흥행을 기록했다. 판소리가 담긴 서편제의 OST는 영화음악이자 국악앨범으로 7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국내 최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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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판소리는 서민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랑 받아왔다. 서민이 경험했던 집단적인 슬픔이 음악의 형태로 승화된 것이 판소리다.
이 음악은 판소리와 함께 한 그들의 '여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동호가 송화와 유봉을 떠나는 장면, 세월이 지나 동호가 누이가 살던 마을을 찾던 장면에서 나온다. 서편제에서 메인 테마라고 할 수 있는 곡이다.
소금연주 버전, 소금과 대금 연주 버전 두 가지가 있다. 이 곡은 소금과 대금 같은 피리 종류의 악기가 등장하는데, 피리 악기 특유의 자유로움이 묻어 나온다. 북 하나 매고 소리 하나를 찾아 갈대밭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던 그들의 인생의 恨이 동시에 느껴진다.
OST는 작은 거인 김수철이 담당했다. 사실 그는 데뷔 30주년의 전설 같은 천재 음악가이지만 내가 아는 곡은 '젊은 그대'밖에 없다. 그는 서편제 OST 작업을 통해 했다. 그 외에 '태백산맥', '철수와 만수', '두 여자네 집', '축제'등 수많은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천년학’이라는 제목의 이 대금 연주곡은 처음 유봉과 어미와 같이 넷이서 비바람 치는 갈대밭을 지날 때, 어미가 애를 낳다 죽으면서 나온다. 앞으로 닥칠 이들의 운명을 절절하게 나타내준다. 또한. 유봉이 송화에게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달일 때 등장한다.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고통과 恨이 구슬프게 느껴진다.
<진도 아리랑 가사> 사람이 살면은 몇 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문경세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소리 따라 흐르는 떠돌이 인생 첩첩이 쌓인 한을 풀어나 보세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 내 가슴속엔 수심도 많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흠흠흠 아라리가 났네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소리꾼 유봉과 그의 자식 송화, 동호 이 셋이서 신명 나게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돌담길을 내려온다. 화면의 저 멀리에서부터 노래를 함께 부르며 내려오는 이 장면은 무려 5분 40초 동안의 롱테이크다.
그 외에도 죽도 못 먹던 송화가 쥐어짜듯 부르던 춘향가 옥중가 등 교과서에서만 보던 판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평소에는 멀게 만 느껴졌던 판소리였는데 영화를 통해 그 시대에 돌아가서 들으니 느낀 바가 달랐다. 이게 바로 영화의 힘이고 문화의 힘이 아닐까? 어떤 음악이든 그 음악이 성행하고 향유되었던 시대를 통해 들으면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