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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영화 - 영화감독 소준문

보고 느끼고 2009. 2. 2. 22:03



하시구치 료스케.
그는 퀴어 영화를 찍는 일본의 감독이다.
스무 살의 미열, 해변의 신밧드, 허쉬 등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섬세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 그가 어느 시점을 계기로 돌연 사라졌다.

그 후 7년이 지난 2008년,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새 영화 ‘나를 둘러 싼 것’으로 그가 돌아왔다. 너무 반가웠다.

그러나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는 순간,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성애자 부부의 사랑 이야기라니. 솔직히 기대감보다는 의구심이 커져갔다.
일반 사람이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것처럼,
‘동성애자가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내내 두려움이 다가왔다.
불이 꺼졌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영화는 이성애자 부부가 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겪는 일상과 감정의 변화
그리고 일본 사회 속 인간성 몰락의 현장을 동시에 보여줬다.

영화가 끝나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전신이 얼얼했다.
여지없이 무너진 나의 편견.
그는 정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갔고 그것은 커다란 감동이었다.
동성애자든 아니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렇다.
그는 7년간 ‘사람’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 온갖 열정을 쏟아 부은 듯 했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고,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단순한 명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다.
어떤 대상에 대한 이야기든지 그 대상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열정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공감 받을 수 있다.

사람, 사람, 사람... 그렇다.
우리 모두는 사람인 것이다.



영화감독 소준문
단편영화 '동백꽃' '올드랭사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영화감독 소준문은 '올드랭사인'으로 서울국제영화제 '넷부문'의 <국제경쟁 베스트 단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로드 투 이태원' 을 제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