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생활문화 스토리 공모전 우수작] 음악이 좋아 모임을 만들다

보고 느끼고 2017. 8. 1. 11:22

회원들과 서로 만나는 기쁨을 나누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두 손을 조용히 모은다. 
하늘이시여, 제발 제 소원을 들어주소서.


* 수상자 : 박영주

 ‘경주 고전음악 동호회’는 이름에 걸맞게 경주 주변에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든 작은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둘째 일요일 오후 두시에 모인다. 동호회의 프로그램은 계절에 따라 다르며 그때그때 따라 변화를 주기도 하고 신년과 연말에는 특별한 감상회를 갖기도 한다. 

 내가 처음 동호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6년 전이다. ‘경주 고전음악 동호회’는 1998년 칠월 생으로 이팔청춘을 넘어올 칠월에 18세가 되었으니 성인이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어 놀랍다. 시작할 때는 그리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회원들이 합심하여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뒤돌아보니 18년간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았다. 마땅한 공간이 없어 처음 시작한 곳은 청소년 수련원이었다. 그러나 무거운 음향기기를 옮기고 날라야 하는 고충이 뒤따랐다. 다음은 지하 커피숍이었다. 가게가 쉬는 날을 잡아 음악 감상을 진행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지하에 물이 새어 나와 맡겨둔 CD와 책이 다 젖어버렸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박물관의 회의실로 옮겼다. 음향기기를 실은 차가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어느 관람객이 박물관 측에 항의를 해서 차가 들어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차가 못 들어가니 음향기기를 입구에서부터 옮기려면 너무 무거워 웬만한 장골도 무리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장소를 또 옮겨야 했다. 그나마 환경이 제일 좋았던 곳으로 8년간 정들었는데 말이다. 박물관 측의 사정을 이해 못한 것은 아니나 갈 곳이 없어 기가 막혔다. 어쩔 수 없이 비싼 대관료를 물고 대중음악 박물관의 홀을 빌려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대관료는 회원들의 회비로 겨우 충당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나 앞으로가 문제다. 지금까지 쭉 잘 해내온 것처럼 역경을 헤쳐나가리라고 믿지만 적이 걱정이 된다. 어서 빨리 안정된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장소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좋은 일이 더 많았다. 3주년 기념으로 2001년에는『하늘의 소리 인간의 노래』라는 책을 발간한 것이다. 1회부터 36회까지의 프로그램과 해설을 실은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이 한 장의 명반』이라는 명저를 펴낸 안동림 교수의 축하 메시지와 『숲속의 방』저자 강석경 소설가도 축하 글을 써주었다. 회원들이 조금씩 찬조한 돈으로 낸 책으로 222페이지의 작은 책이지만 무척 대견스러웠다.

 2004년에는 처음 1회부터 72회까지의 프로그램과 해설 외에 사진까지 실어 전보다 더 충실해진 내용을 실었다. 누구라도 클래식에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편집한 것이다. 87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어서 1, 2권으로 나누어 내었다. 책에는 안동림 교수와 강석경 소설가의 축하 글 이외에 김성춘 시인의 축시가 실려 또 한 번 경주 고전음악 동호회의 저력을 과시했다. 두 번째 낸 책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알려져 주문이 들어오기도 하였다. 두 권 모두 회원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졌다. 제목은 역시『하늘의 소리 인간의 노래』였다.

 촌스럽고 정겨운 동호회의 분위기가 좋아 안동림 교수는 해마다 봄가을 두 번 경주를 찾아왔다. 따끈따끈한 명반을 들고 와 해설과 함께 들려주곤 했다. 주로 오페라였다. 절친한 친구인 곽 선생님도 클래식 팬이라 언제나 서울에서 같이 오셨다. 문턱 없는 음악 모임이라는 그런 소식이 알려져 조선일보 문화란을 장식하는 영광도 누렸다. 그 후로도 안동림 교수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봄가을에 왔으니 ‘경주 고전음악 동호회’의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이별도 있었고 만남도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른 지방에 이사를 간다거나 사업상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해서 떠나는 분들이 생겼다. 그런 반면 어디서 정보를 접했는지 새로 가입하는 분들도 생겨 동호회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래 지속하다 보니 경주뿐만 아니라 포항, 대구, 울산, 부산을 비롯해 창원에서 오는 분도 있다. 이젠 모두 한 가족 같아 만나면 반갑다. 간식으로 과일을 가져오거나 떡을 해오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묵을 쑤어 양념간장까지 준비해 오는 회원도 있어 눈과 귀뿐만 아니라 입도 즐겁게 만들었다. 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아 동호회가 오래도록 지속한 듯하다. 

 고전음악 동호회라고 해서 클래식만 듣지 않는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팝, 재즈, 칸소네, 샹송, 파두 등 각 나라의 민요를 비롯해 모든 분야를 두루 접한다. 때로는 우리 국악과 현대음악도 선곡해서 듣는다. 음악 감상 1부는 CD로 듣고 2부는 DVD로 보고 듣는 시간을 가진다. 감상회가 끝나면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그날의 일을 마무리하며 담소를 나누고 2차로 차를 한 잔 마시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지금은 근근이 이어가고 있지만 앞으로가 좀 걱정스럽다. 비싼 대관료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대관료를 좀 낮춰 주거나 아니면 누군가 도움을 주거나 둘 중에 하나만 이루어져도 좋겠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기도하는 심정으로 앞일이 잘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 회원들과 서로 만나는 기쁨을 나누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두 손을 조용히 모은다. 하늘이시여, 제발 제 소원을 들어주소서.

  하늘의 소리가 인간의 노래가 되어 들려온다. 귀를 쫑긋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