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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근사하네요. 참 포근해요. 그런데 살기는 좀….” 어쩌다 멋진 한옥을 찾은 이들이 앞다퉈 던지는 말이다. 우리에게 한옥은 운치는 있지만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주택으로 각인돼 있다. ‘전근대적인 주거공간’이란 인식이 아직도 팽배한 것. 그러나 요즘 새로운 한옥들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한옥의 품격은 최대한 살리면서도 실내구조를 간결하면서도 쓸모 있게 개조한 멋진 한옥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있다.
▶그동안 한옥은 실패(?)했다!=한옥이 실패했다니? 이 무슨 말일까? 유학파로는 드물게 한옥디자인에 푹 빠져 있는 건축가 황두진(황두진건축사무소 소장)씨는 “한옥은 근대화에 실패했다”고 강변한다. 서울대 및 예일대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서 활동하다가 우연히 한옥 개조에 참여한 황씨는 “10여채의 한옥디자인을 하면서 한옥의 기본기능과 내구성 등 경쟁에서 완패한 외적 요인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게 됐다. 한옥이 현대건축으로 발전되려면 인식 전환과 표준화 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식 주방과 욕실을 마련하고, 지하에 홈시어터를 만드는 등 한옥을 현대적 용도로 바꾸는 작업을 시행한 그는 “한옥은 개선과 진화의 여지가 풍부히 남아 있다. 문화재급 전통한옥은 원형을 잘 보존해야겠지만 주거용 한옥은 한옥의 미덕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쓸모 있게 리노베이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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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동안 한옥은 배수 및 냉난방 문제, 불편한 부엌과 화장실, 빗물 처리, 답답한 안마당, 사생활 결여 등으로 근대화에 실패했다. 그러나 깊은 처마라든가 내외부 공간의 자연스런 연결, 친환경적 재료 등 한옥의 본질적 요소를 살리면서도 새로운 미감을 구현한 멋장이 한옥들이 잇따라 탄생하며 제2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다양한 표정의 새로운 한옥들=뽀얀 젖빛 한지가 아늑함을 뿜어내는 안방, 띠살여닫이와 용자살미닫이를 이용해 단 크고 작은 문들, 딱 들어맞는 정갈한 가구들, 마당 한편의 작은 물확, 깔끔한 담장…. 전통과 맞닿아 있는 한옥의 고졸한 모습이다.
그러나 좀더 살펴보면 새로운 한옥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다. 특히 스타일리시한 한옥이 크게 늘며 또 다른 미감을 뽐내고 있다. 전통 한옥의 외양은 십분 살리되 현대 생활의 이점을 살린 리노베이션이 서울 북촌 일대를 중심으로 한창인 것이다. 아파트보다 더 세련되고, 앞선 미감을 지닌 미니멀한 한옥도 앞다퉈 등장하고 있다.
벽을 허물고 문을 터서 마루와 각 방은 물론 부엌과 화장실이 하나로 편리하고 간결하게 연결되게 한다든지 복층이나 지하실이 있는 한옥을 만들어 용적률과 수납공간을 넓힌 예가 그것. 추위를 막기 위해 이중문과 보일러를 설치하고 지하를 더 파서 공간을 시원하게 트고, 난방코일을 까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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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작업을 통해 한옥은 멋지고 쓸모 있는 집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아파트에서 태어난 30~40대 젊은 층이 한옥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고 있다. 이들은 ‘한옥살이’에 대해 “아파트가 따라올 수 없는 한옥만의 안정감과 온화함이 한옥의 매력”이라며 “게다가 공들여 간결하게 고친 한옥은 우리 세대의 미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말한다. 게다가 높은 천장과 두터운 흙지붕에 기와를 얹었기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처마가 길어 강한 햇볕과 비바람이 직접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등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고 입을 모은다.
아파트에 살다가 3년 전 북촌의 한옥을 사서 고친 젊은 건축가 유승은 씨(황두진건축사무소 실장)는 “한옥은 진부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개조해 살아보니 한옥은 더없이 미니멀한 공간이더라”고 밝혔다. 지극히 현대적인 가구와도 잘 어울리고, 다락 등은 현대의 붙박이장보다 더 쓸모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한옥은 집주인에 따라 천가지 만가지 공간변화가 가능한 ‘테일러메이드 주택’이라고 말했다.
현재 북촌, 즉 종로구 가회동, 삼청동, 사간동 등 11개 동 일대에는 약 920채의 한옥이 남아 있다. 이곳은 그 자체가 살아 숨쉬는 역사다. 특히 가회동 31번지 일대는 정성껏 고친 아름다운 한옥들이 즐비해 전통과 현대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선 국악 공연, 전시회 등도 자주 열린다.
올여름 가회동의 ‘무무헌’이란 한옥에선 비오는 날 김영길의 아쟁산조 공연이 열려 연주자는 대청에서 활을 긋고, 관객들은 대청은 물론 안방과 건넌방에 둘러앉아 청아한 음악을 즐겼다. 툇마루에 앉아 편안히 감상하는 관객들은 기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까지 배경음으로 들으며 ‘한옥이야말로 최고의 국악콘서트홀’이라는 말을 실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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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한 아름다움에 모던함을 더하니…=한옥은 지금껏 목수가 짓는 집으로만 알려졌지만 최근들어 빼어난 일급목수와 함께 건축가들의 참여가 늘면서 새로운 표정들이 보다 활발하게 깃들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도 생겼을 정도다. 이들은 쓰임은 넓히고, 제대로 되살려낸 집들을 소개하는 책도 앞다퉈 출간하고 있다. 옛것의 장점은 지키고, 옛것에 없는 새롭고 쓸모있는 것은 보태 편리와 실용, 아름다움의 측면을 강조한 한옥 개ㆍ보수가 늘고 있는 것.
건축가 최욱씨(One O one건축 대표)는 “한옥 리노베이션은 옛것의 연장과 지속 가능한 삶의 점진적 변화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의 수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옥의 매력은 안과 밖, 혹은 안과 안이 각기 분리된 게 아니라 문의 열고 닫힘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호소통되는 데 있다. 각각의 공간은 독립적이면서도 문을 열면 하나의 공간으로 부드럽게 통합되는 게 바로 한옥이다. 즉 밖의 자연은 안은 취하고, 안은 밖을 취하는 것이다. 이로써 깊은 공간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옥이 빚어내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지붕 안쪽의 서까래가 고스란히, 생생하게 펼쳐지는 모습이다. 이로써 공간이 구축되는 원리와 형태가 담백하게 드러나는 데 이는 오늘의 눈으로 봐도 더없이 모던하다. 아파트의 삭막한 천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품격 있고 멋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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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한옥의 골격은 유지하되 가장 불편했던 공간인 주방과 화장실 등을 과감하게 현대적 디자인을 차용해 개조한 예가 많다. 또 한옥의 전통구조는 존중하면서도 입식가구와 벽난로를 들인 예도 적지않다. 이 또한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게 신기하다.
한옥은 서울이 600년 역사를 지닌 도시임을 말해주는 우리 고유의 소중한 문화컨텐츠이다. 또 현대인의 삶을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여기에 새롭고 기품있는 한옥들이 등장하면서 이 같은 요소들이 잘 부각되고 있며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옥을 사랑하고, 한옥에 살기를 열망하는 이들이 늘면서 앞으로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임에 틀림없다.
<사진은 가회동 ‘가회정(嘉會亭)’(디자인 최욱(One O one건축),사진 남궁 선)과 가회동 ‘무무헌(無無軒)’(디자인 황두진(황두진건축사무소),사진 박영채)의 실내외 공간. 이들 한옥을 비롯해 북촌 일대 한옥 14채(주한미국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 포함)의 사진, 영상, 글을 한데 모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한옥특별전 ‘우리집은 한옥이다’전이 19일까지 서울 관훈동 학고재화랑에서 열린다. 학고재 전시 이후에는 서울대와 고려대에서도 12월14일까지 순회전시된다. 문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02-739-3131>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