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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울림] 혼자일 때 그곳에 가는 이유 - 소설가 박상우

보고 느끼고 2008. 10. 27. 18:55



사람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
그것이 내가 평생 마음에 품고 사는 화두이다.
그것 때문에 인생을 살고, 그것 때문에 문학을 한다.
인간과 인생 공부의 유일무이한 도구는 ‘나’이다.
세상은 나에게서 비롯되고 나에게서 종말을 맞는다.
내가 태어날 때 세상은 열리고
내가 눈을 감을 때 세상은 스러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우주의 중심이다.

하지만 사람은 세상을 사는 동안 근본적인 나를 망각하고
망상적인 나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망상자아에 사로잡히면 감정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어느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한다.
망상자아를 벗어던지고 근본자아를 만나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 길을 떠난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 소금강, 대관령, 김삿갓 계곡,
청령포, 만항재, 태안반도, 말무리반도, 자유로,
양양 조산리 앞바다 같은 곳을 찾아가 잃어버린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근본자아를 회복할 때의 그 기쁨,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으랴.

나를 회복하면 세상의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나와 남, 이것과 저것, 이쪽과 저쪽,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 같은 것들…
모든 것이 ‘하나’라는 근본의식으로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하나의식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세상을 내다보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로 보이고 느껴진다.
‘우리는 하나’라는 표현은 그런 우주적 배경을 지닌 말이다.

남에게 둘러싸인 나, 남에게 시달리는 나,
남 때문에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나는 모두 망상자아에 시달리는 나이다.
그런 나는 혼자 길을 떠날 필요가 있는 나,
혼자 떠난 길에서 근원자아를 되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나이다.
지금, 혼자 길을 떠나야 할 시간.



소설가 박상우
첫 소설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발표 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박상우님은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테마 산문집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