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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 의거선서일은 4월27일"<日자료>

보고 느끼고 2009. 4. 27. 02:20

"윤봉길의사 의거선서일은 4월27일"<日자료>
알려진 것보다 하루 늦어…윤의사 조카, 日내무성 작성자료 입수

올해로 77주년을 맞는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의거선서일이 원래 알려진 것보다 하루 늦은 4월27일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윤봉길 의사의 조카인 윤 주 매헌연구원 연구위원은 26일 발간한 '나의 백부 매헌 윤봉길'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 선서일이

현재 알려진 1932년4월26일 상하이(上海)교민단 사무실이 아니라 1932년 4월27일 상하이 안공근 선생의 집이라고 말했다.

윤 위원은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일본 내무성 보안과가 작성한 '상하이 윤봉길 폭탄사건 전말'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의거 선서식이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공근 선생이 거주하던 상하이 불조계 패륵로 신천상리(佛租界 貝勒路 新天祥里) 20호에서

1932년 4월27일 열린 것으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문서에 따르면 윤 의사는 4월26일 선서문을 쓰고 안공근 선생 집에서 선서식을 하려고 했으나 날씨가 나빠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하루 뒤인 27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 선서식을 거행했다는 것이다.

윤 의사는 선서식을 한 날

▲태극기 앞에서 가슴에 선서문을 부착하고 왼손에 폭탄과 오른손에 권총을 든 모습

▲태극기 앞에서 김구 선생과 함께 서 있는 모습

▲태극기 앞의 독사진 등 유명한 3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윤 연구위원은 또 책에서 일본 헌병대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윤봉길 의사의 의거 동기도 소개했다.

윤 의사가 의거 후 공식 자백을 통해 문서화된 의거 동기가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보고서는 "범인(윤봉길)은 동포가 일본인에게 박해당하고 있음에 분개해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17~18세부터 신문, 잡지를 보면서 조선이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자력으로 훌륭히 통치할 수 있음에도

왜 일본에 복종하고 통치를 받아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윤 의사는 이어 "세계 문명이 진보된 금일 타국에 합병돼 있는 것은 치욕이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신문 지상에서 상하이에 독립운동기관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곳에 가서 한국독립을 위해 활동하려고 건너왔다"고 밝힌 것으로 일본문서에 기록됐다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윤 의사의 의거 선서문 작성일자가 1932년4월26일로 기록돼 있어 지금까지 그날을 선서식이 열린 날로 잘못 알았다"면서

"그러나 일본측 문서를 확인한 결과 윤 의사가 선서식을 한 날은 하루 늦은 4월27일이었으며 이틀 후 의거를 실행에 옮겼다"고 설명했다.

최근 윤 의사의 의거 장소인 상하이 루쉰(魯迅)공원을 방문한 윤 위원은 "윤 의사의 의거 선서문에는 선서식 장소가 나와있지 않아

교민단 사무실이었을 것으로 추정됐으나 일본 문서에는 안공근 선생 집으로 분명히 명시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상하이총영사관과 상하이 교민, 유학생, 상하이시 관계자 등 100여명은 오는 29일 오전 10시 루쉰공원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윤 의사 의거 77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상하이=연합뉴스 2009.04.26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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