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은 거리와 살아있는 거리
고도(孤島)에 혼자 떨어진다면 어떨까? 외로움을 느낄까? 두려움이나 공포심을 느낄까? 아니면 절망감에 휩싸일까? 반대로 서울의 한복판 또는 낮선 외국의 어느 도시 한가운데 서 있을 때에는 고도에서의 심정과 다를 게 무엇 일까? 황당함? 복잡함? 난해함? 소란스러움? 무질서함? 혼란스러움? 생경 함? 이런 모습들로 표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이 외로움이나 절망감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서울의 거리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우선 한마디로 복잡하고 구분이 어 렵다는 점이다. 비슷비슷한 풍경, 특색 있어 보이지 않는 거리, 마치 미로(迷 路)에 빠진 기분이다.
그 다음으로 걷는 것 자체가 불안하고 불편하다는 지적이다.
거리는 차량과 보행 소통의 기능과 그 거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동시에 갖고있다. 편리성·안전성·쾌적성을 두루 갖춘 통행기능의 유지는 물론 건축물·가로안내·신호·광고 등 각종 다양 한 정보를 제공받기도 한다. 여기다 욕심을 부린다면 호기심과 즐거움도 함께 제공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 사람이 우선인가? 차량이 우선인가?
도시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건축물도 교통도 산업도 결코 도시의 주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시는 과연 어떠한가? 사람보다는 차량이, 사람보다는 건축물이, 사람보다는 기능을 우선시 하지는 않은지 반성 해야 한다.
차량소통을 원할히 한답시고 인도(人道)를 축소한다거나 건널목을 없애고 지하도나 육교를 설치하는 것이 기능 우선의 도시·인간 소외의 도시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늘이 지든 말든 스카이라인이 파괴 되든말든 자연이 훼손 되든말든 고층·고밀의 건축물을 건축하는 것이 스스로 인간을 소외지대로 몰아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개발론자들에게는 개발의 이익이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개발이익은 극소수의 몇 사람들에게만 돌아갈 뿐 대다 수 나머지 사람들은 개발의 피해자일 뿐이다. 오늘날의 지구환경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인간성회복 운동과 자연환경 보호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한 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시 안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보면 현재의 도로는 안전성에서는 매우 취약하다. 최근 6년('91-'96)동안 서울 안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는 매년 48,600 여건이며 이 중 900여명이 사망하고 61,000여명이 부상당한다는 통계를 갖고 있다. 특히 보행중의 사망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국 교통사고 건수의 18.7%에 해당하며, 사망·부상자수도 전국의 17.7%를 차지 한다('97/경찰청). 이 통계만으로도 서울 도심의 도로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 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로율을 확보하고 도로구조를 개편하고 교통체계를 개선한다고 하지만 예 산등으로 빠른 시간 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도시교통을 전공하는 사람 들 중에 그나마 부족한 인도를 차도로 변경하여 도심의 차량통행속도를 높 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차량의 소통속도를 높이면 도로 양편을 연결하는 도시기능은 단절될 수밖 에 없고 그 결과 보행환경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 걷기가 왜 그리 불편해?
요철된 보도블럭, 굴곡이 심한 차량출입로, 남발된 볼라드, 신호등·가로 등·전주·지주 안내판, 가로수의 혼잡스러움에서 노점상·가판대·화물적 재·차량 등이 보행공간을 무단 점령하고 있다.
정상인도 걷기가 어려운데 장애인들에게서는 오죽하겠는가? 그나마 보·차 구분이 있는 경우는 나은 편이다. 보·차 구분이 없는 이면도로는 마치 곡예를 하듯이 지나야 할 형편이다.
서울의 보도율은 도로연장 기준으로 볼 때 25.8%(보도가 차도 양측에 조성 됨을 감안하여 보면 실제 도로연장에 대하여 12.9%에 불과함)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서울시보행환경 기본계획 11p). 그나마 확보한 보도도 온전히 보행자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보도를 점령하고 있는 가로시설물(Street Furniture)의 설치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가로등은 시청에서, 보도블럭은 구청 토목과에 서, 가로수는 구청 공원과에서, 신호등은 경찰청에서, 교통 안내판은 시청 교 통국에서, 전주는 한국전력에서, 전화부스는 한국통신공사에서, 물품판매부스 는 구청 건설관리과에서, 교통신호기기는 경찰청에서, 지하철 환기구는 지하철건설본부에서 허가하거나 설치·관리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 도로관리부서에서 조사한바에 의하면 보도상에 설치되는 시설 물은 22개 관리부서에 100여종이 넘었다.
각자의 시설물의 기능만 생각했지 보도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유사기능이 중복된 경우도 없지않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들 을 통합 조정할 마땅한 기구나 제도 등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 도심에서 운전하기가 편하고 즐거운가?
서울의 차량 증가율을 살펴보면 '91년도 137만5천대에서 '97년말 현재 224 만9천대가 되어 무려 64%가 증가하였다. 반면 도로율의 증가는 '91년도 18.5%가 '97년도에는 20.42%로 고작 10.4%만 증가했을 뿐이다.('98시정현황/ 서울시) 도심 통행속도가 17㎞/h인 현실을 감안할 때 운전자의 입장에서도 그리 편안한 거리는 아니다. 정체현상은 곳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공공기관에선 10부제를 시행하고, 도심통행료의 부과 등 어느것 하나 만족할 것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형편에 보행인에 대한 배려는 뒤로할 수밖에 없었을런 지는 모른다.
주행중 운전자가 바라다 본 거리풍경은 어떨까? 짜증스러운 여건에 거리 경관마저 혼돈과 무질서로 이루어져 있다면 불편 한 감정은 배로 증가할지도 모른다.
□ 이야기가 있는 거리
돌아가는 삼각지가 없어진지 오래지만 어느 가수의 노래로 지금까지 옛 정 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의 아베크 장소 로, 명동은 젊음과 낭만이 가득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사동길이나 압구정의 로데오길처럼 이야기가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은 도시민에게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둘러보면 이러한 곳이 적지 않다. 다만 이를 누군가 꿰메어서 시민에게 제공하는냐 하는 것이다.
한 도시의 문화수준은 역사문화재나 특정 건조물등 물리적인 환경에 의해 평가되겠지만 그것은 과거의 문화수준일 뿐 오늘날의 수준은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현재의 문화수준은 그 도시를 직접 접하는 거리에서 결정되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서울은 문화의 도시인가? 품격있는 도시인가? 정말 걷고싶은 도시인 가?
□ 어떻게 할 것인가?
종로에는 감나무를 심고 을지로엔 사과나무를 심자. 대학로의 마로니에 처럼 인사동에 복숭아 나무를 심자.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게 이야기꺼리를 만들자. 600년의 역사와 현대의 도시 구조물, 가로 시설물들을 제대로만 연출한다면 어디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 의하면 도로경관축의 특성을 강화하고 경관가로·상징가로·조망가로·문화의 거리·풍치로·낙엽거리를 지정 운영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997년 1월 5일 『서울특별시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개선에 관한 기본 조 례』를 우리나라 최초로 제정했다. 여기서 보행환경이란 '보행자의 보행과 활동에 미치는 물리적·감각적·정신적 측면과 이에 관련된 제도 등을 포함 한 총체적 환경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감각적·정신적 측면의 도로가 바로 걷고 싶은거리가 아니겠는가? 고건 서울시장도 선거공약에서 서울의 거리를 걷고 싶도록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서울시에서는 그 동안 보행환경과 관련한 여러계획들을 해당부서에서 추진 하고 있다. 「서울시 보행환경 기본계획」「차 없는 거리 조성사업」「문화 환경조성 기본계획」「문화예술의 거리 지정」「녹화거리 조성사업」「역사 탐방로 조성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거리환경을 개선하는 계획을 수립 중이거나 일부에서는 사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문제는 이것들을 어떻게 잘 조정하고 엮어서 「걷고싶은 거리」를 만드느냐 하는 점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시설물 관리부서와 예산과 법규가 각기 다르므로 의견을 조율·통합하는 것은 매우 어려 운 일이다. 이를 어느 한 부서에서 맡아야 한다.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걷고싶은 거리」가 어 떤 거리인지를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무리 전문가가 좋다하더 라도 시민이 싫어하면 의미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사동을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하였더니 인사동 고유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을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신중히 할 것을 주문한다.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시민에게 도시를 되돌려 주는 작업을 「걷고싶은 거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어떨까? (PLUS 9809)
* 본 글은 “윤혁경의 건축법해설 홈페이지(http://www.archilaw.org) 나의 이야기 > 도시탐험”에서 발췌된 글로써, 일부 내용은 현재 법령등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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