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19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가 있다. 공부하다가 돈 벌다가 또 공부하다가 돈 벌다가 하면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공부하다 보니 그렇게 길어졌다. 친구는 평균치 한국인과는 많이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한창 나이 이삼십대를 독일에서 보냈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겠고, 친구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아무리 한국사회를 오래 떠나있었다 해도 일단 두 자녀와 함께 4인가족의 구성을 취하는 순간부터 한국사회의 트랜드에 가담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돼있는 것이다.
친구 부부는 유학을 마친 뒤, 새빨간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왔고 흑석동 달동네에 보증금 1천5백만원, 월세 30만원짜리 집 한 칸을 빌렸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고 가파른 길 꼭대기에 있는 이 집은 지대가 높은 만큼 전망이 트여있고 볕이 좋은데 그는 이 월세집을 약간 뜯어고치고 흰색 페인트를 칠해서 아주 쾌적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켜놓았다. 벽을 온통 그림과 사진과 장식물들로 꾸미는 취향은 다분히 서양풍이다. 다만 화장실에 욕조가 없어서 그는 부엌에서 물을 한 솥 데워 욕실로 가서 찬물과 섞어 샤워한다. 내가 “불편할 텐데 욕조를 달지 그러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수리하려면 몇 백만원 든대, 그냥 참고 살지 뭐. 그런데 그게 좋은 점이 있어, 복잡하게 살다보면 단순한 것에 감사하게 되거든. 생활에 좀 불편한 것도 필요해.”라고 대답했다.
그는 ‘좀 불편한 것도 필요해’라고 말하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 그는 필요한 만큼 불편한 게 아니라 생활이 온통 불편투성이다. 자동차 없이 서울에서 생활한다는 것도 그렇고, 고작 월세집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가 또 이삿짐을 싸야 하는 것도 그렇다. 첫번째 집은 운 좋게 6년 정도 살았지만 주인이 비워달라고 해서 올봄에 이사를 했다. 새 집은 이태원 주택가에 있는데 이곳 역시 자동차길에서 1백 미터쯤 꼬불꼬불 골목을 들어가야 하고 재개발 대상 지역이라 몇 년 전부터 새로 집을 짓는 법도 고치는 법도 없는 동네다. 하지만 그 낡디낡은 집을 친구는 다시 또 엄청 공을 들여 내부수리를 했다. 이번에는 흰 페인트가 아니라 흰 벽지로 천정과 벽을 모두 도배했다. 다락방이 두 개인데 하나는 망사커튼이 달린 침실로, 하나는 명상의 방으로 꾸몄다. 예전 집에 걸려있던 그림과 사진과 장식물들도 모조리 이사를 왔다. 이 집은 부엌이 깊어서 마루에서 가파른 계단 두개를 내려가야 한다. 내가 기왕 집을 고칠 때 부엌 바닥을 높이지 그랬냐 했더니 친구는 전통적인 한국의 집들처럼 부엌이 깊은 것이 이 집의 재미라고 했다. 어쩌면 이것도 이 친구에게 ‘필요한 불편’인지도 모른다.
기업체에서 문화적응훈련 및 컨설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 친구는 이따금 비즈니스 미팅이 있을 때 화려하고 드레시한 옷을 차려입고 나서는데 어떤 것은 벼룩시장에서 사거나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것이다. “옷 수선하는 단골집만 있으면 돼. 옷감만 좋으면 다 뜯어고쳐 주니까.” 그는 생활하다 어떤 물건이 꼭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 그걸 ‘사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안한다고 한다. 독일서 그가 살던 괴팅겐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물건 버리는 날이 있었는데 그는 ‘물건 버리는 날’을 기다리거나 벼룩시장에 가면 꼭 그것이 있더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모예드종 개를 데리고 하루에 한번씩 동네를 산책하는데 주택가 길가에 나와 있는 재활용 쓰레기더미에서 그는 무수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들을 집으로 주워 날랐다.
주운 옷을 고쳐 입는 것은 마음에 드는 새 옷을 사는 것에 비해 불편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 친구는 이미 그 불편에 심하게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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