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기술정보

‘농협 개혁’ 릴레이 인터뷰 ② 성진근 전 농협개혁위원장

보고 느끼고 2009. 3. 30. 02:30

‘농협 개혁’ 릴레이 인터뷰 ② 성진근 전 농협개혁위원장

“농협 회장 직선제는 대기업 회장 투표로 뽑는 격”

성진근(67·사진) 한국농업경영포럼 이사장이 11월 열린 ‘경제여건 변화와 농수산 부문 대응 방안’ 심포지엄에서 옆에 앉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에게
전한 말이다. 성 이사장은 올 3월부터 4개월간 농협중앙회 산하 농협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농협 개혁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농협에서 무시하자 최 회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던 것이다. 당시 그가 시민단체 및 학계·농업계의 의견을 취합해 만든 농협 개혁 방안의 골자는 ▶회장 직선제 폐지 ▶회장 단임제 혹은 연임 1회 제한 ▶지역농협 통합 ▶도시 농협금융과 지역 농협금융의 빅딜 등이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농협개혁안은 농협중앙회와 국회 공청회를 거치면서 골자가 훼손된 채 발표됐다. 그는 이후 언론 인터뷰를 기피해 왔다.

서울 수서동에 있는 사무실로 찾아간 기자에게 그는 “아직 농협 개혁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농협의 근본적인 문제가 뭔가.
“농협중앙회는 인재가 살아남지 못하는 조직이다. 그걸 빨리 바꿔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회장 선출 과정에 있다. 1100여 조합장이 모여 투표로 뽑는다. 조합장 중엔 고학력 전문 인력이 많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400조원을 운용하는 국내 대표 금융기관의 회장을 뽑는다. 삼성이나 LG가 회장을 직원 투표로 뽑는 격이다. 능력이 뛰어난 시골 출신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형님, 아우’로 엮여 지내 온 사람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회장을 이런 식으로 뽑다 보니 각 부문 대표, 그 아래 임원까지 능력 있는 사람이 발을 못 붙인다. 농협 내 유명 대학 출신자가 어디 있는지 봐라. 회장에게 아부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는 조직이다.”

-농협은 조합원의 자발적 조직 아닌가. 대표 간선제는 협동조합 정신과 상충하는 게 아닌가.
“정부도 간선제로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 늦었지만 바른 방향이다. 해외에서도 농협 회장을 직선으로 뽑는 경우는 없다. 또 회장은 농민 대표라는 상징성만 갖고 경영엔 간여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지 않으면 한국 농협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대표권과 경영권을 확실하게 분리해야 한다. 회장이 부문 대표 추천권을 가져선 안 된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일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지역조합 통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망한다. 광역조합 한 개로 통합되기 전 전남 순천엔 11개 지역조합이 있었다. 통합 전 농협 경영비의 72%가 인건비였다. 번 돈으로 월급 주고 필요한 비품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통합 후엔 인건비 비중이 48%로 줄었다. 현재 농협은 농민이 아니라 농협 직원을 위한 조직이다.”

-지역조합과 도시조합 은행의 빅딜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시골에 가 봐라. 농협 은행 옆에 다방, 그 옆에 축협 은행, 그 옆에 인삼협 은행, 다방 하나 건너 다시 농협중앙회 은행이 있는 꼴이다. 몇 년 전 충북 보은에 갔는데 인구 2만의 소도시에 농협 계열 은행이 7개 있더라. 무슨 경쟁력이 있겠나. 김대중 정부가 농협과 축협을 통합했지만 산하 금융기관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농협중앙회 은행은 도시에서, 지역농협 은행은 각 지역에서 영업하도록 해야 한다. 양쪽에 나눠져 있는 상호금융과 시중은행 기능을 교환하는 빅딜이 필요하다. 그래야 도시농협도 지역농협도 살 수 있다.”

-농협 개혁은 수십 년 묵은 과제다. 개혁 과제가 뭔지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도 왜 실현이 안 되나.
“농협은 농협을 개혁할 수 없다. 중앙회장은 조합을 쥐고 흔든다. 정대근 회장 시절 한 개 조합에 연간 최대 100억원을 지원했다. 최대 연 6조원이 지역 농협에 각종 명목으로 나갔다. 100억원을 5% 이자만 받고 빌려줘 봐라. 5억원이다. 이 돈이 어디 쓰였겠나. 선거 자금이나 세력 확장에 쓰이지 않았겠나. 농협이 농림부의 감사를 거부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농림부 차관을 뇌물 수수로 몰아 갈아치우고, 국장 정도는 우습게 안다.”

-이명박 정부가 다시 농협개혁위원회를 만들었다. 상당히 의욕적인 것 같은데.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개혁 과제는 너무 많이 잡지 말아야 한다. 100개쯤 개혁 과제를 선정해 그중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몇 개만 해결하고 생색내는 게 제일 나쁘다. 정말 중요한 것을 정해 임기 내에 반드시 해내야 한다.”

-국내 농수산물은 너무 비싸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땅값과 인건비가 비싸서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쟁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한우 농가가 다 망한다고 했다. 수입 쌀 들어오면 국내 쌀 농가가 다 망한다고 했다. 정말 그랬나. 아니다. 국내 농산물 경쟁력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고품질 제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잘사는 농촌,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농업을 위해 고칠 건 고치고, 도울 건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 농협은 할 일이 많다. 농민 대부분이 농협 조합원이다. 농협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농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줄고 있다.
“내가 농과대에 들어갔을 때 전체 인구의 40~50%가 농촌에서 살았고 산업 비중도 절대적이었다. 지금 농업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하고 농업 인구도 10%가 안 된다. 농업은 이제 더 이상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도시민이 적선하듯 돈을 나눠주는 곳이 돼 버렸다. 농림부 장관을 지낸 한 지인이 ‘농림부 장관이었던 게 창피하다’고 하더라. 전임 농림부 장관의 면면을 살펴봐라. 정책 수혜자가 공급자가 돼선 곤란하다. 정부도 농촌에 애정을 갖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표를 의식해 반짝하는 걸로 끝나선 안 된다. 포퓰리즘으론 농협과 농촌의 문제를 해결 못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