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기술정보

유기농업운동, 미래 과제를 만나다

보고 느끼고 2008. 12. 18. 20:30

지난 세월 농민들은 농업을 그저 돈벌이나 생계의 한 방편으로만 생각하면서

때가 되면 언제라도 힘든 농사를 집어치우고 소비 지향적인 도시에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농민들은 새롭게 자기 삶에 대해 서서히 눈뜨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농사짓는 행위야말로 가장 생태적인 것이고 자연친화적인 것이며,

생명을 돌보는 가장 귀한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는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각한 측면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지지와 격려, 응원에 힘입은 바도 크다.

 

농민들은 유기농업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서로 소통하고 공생하는 관계임을 깨닫고, 도농 간의 직거래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연대와 협동의 삶을 체험하고 있다.

이제 유기농업은 더 이상 변방의 비주류 농업이 아니라, 이 시대가 함께 추진해야 할 농업의 한 방법으로 채택되고 있다.

정부가 앞 다투어 유기농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이를 육성하고 장려할 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 들어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도가 붙은 듯하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인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유기농업의 빠른 확산이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웰빙이나 로하스로 지칭되는 사회적인 흐름이 소비자들의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보신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농민들마저 유기농업을 올바르게 이해하기보다는 상업적 유기농업으로 일관하여 진정한 유기농업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정부나 지자체 또한 우리 농업의 대안이라며 마구잡이로 유기농업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에는 전국적으로 수만 가마의 유기농·무농약 쌀이 남아돌아 유기농업 실천농가들을 곤란에 빠뜨린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연대와 협동의식 없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에 유기농업이 휩쓸려간 까닭이다.

농민과 도시민의 연대의 폭은 확장하지 않고, 협동의 틀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유기농산물 확대운동만을 중점적으로 벌여온 결과물이다.

바로 이점이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 스스로 극복하고 변화시켜야 할 주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유기농업에 의한 지역순환농업시스템 만들기는 우리 농업과 농촌에 적지 않은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아산, 홍성, 홍천, 양평 등지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 훌륭하게 지역순환농업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농촌에서 젊은이들이 자취를 감추고 농촌공동체는 해체되어 버린 상황에서 물질순환 원리에 입각한 지역순환농업시스템은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개별 농가로서는 전통의 농사방식, 물질순환 원리가 작동하는 농사를 지탱하기가 쉽지 않다.

특별한 한두 농가가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농촌에서 이를 전면적으로 실시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개인을 넘어 지역의 농민들이 서로 연대하고 협동하는 지역농업운동은 물질순환 원리가 작동하는 농업과 해체된 농촌공동체를 복원하는 운동이다.

농민들만의 연대와 협동운동만이 아니라 지역을 무대로 지역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지역농업운동이라고 생각된다.

개별 농가로는 엄두를 내기가 어려운 경종농업과 축산, 가공을 지역으로 묶어내고, 유기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인적, 물적 지역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에 배치하고

확장시켜나가, 진정한 지역의 자립과 자치, 자급이 가능한 생산방식과 생활방식을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나가는 지역순환농업시스템이 활기차게 추진되어야 한다.

앞으로 이 같은 노력이 더욱 많은 지역에서 활기차게 일어나길 기대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도시와 농촌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단극점의 형식으로는 유기농업운동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널리 꽃피우기는 어렵다.

이제 지금까지 해왔던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공급이라는 단극점이 만나는 방식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야 한다.

지역을 무대로 도농공동체적 삶을 전 영역에서 실현함으로써 농촌과 도시, 농민과 도시민 가릴 것 없이 생명의 어머니인 땅을 매개로 단극점이 아닌

면과 면이 만나는 전면적인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지역의 자립과 자치, 자급이 전제되지 않고,

이를 향상시킬 노력이 우선하지 않는 중앙 집중적인 유통시스템만으로는 지역을 무대로 지역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지역농업운동의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

물품만 보이고 사람의 관계는 전혀 보이지 않는 지금의 구조를 변화시킬 지역거래시스템을 어떤 식으로든지 활발히 가동시켜내야 한다.


지역을 무대로 하는 지역순환농업시스템과 지역거래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위해 농민들의 지혜를 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농민 혼자만의 결단과 실천행위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흔히들 말하듯이 전폭적인 농업, 농촌 지원책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총체적이고 다면적인 농업, 농촌정책이 나올 때만이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은 우리 농업은 회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조완형(한살림 상임이사)